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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역사 - 11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

by Randy_Rhoads 201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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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고티에가 프랑스 패션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패션 디자이너 그 이상이다.
프랑스 수출의 지대한 공헌자인 그가 영국에서는 프랑스인 동료 '안토니 드 까우네'와 함께 출연한
키치 TV 시리즈 '유로 트래시(urotrash)'로 더욱 유명하다.  

 

1952년 태생인 그는 파리 교외인 아르쾨유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 대부분 수업을 빼먹고 머릿속으로 콜렉션을 디자인하고 할머니에게서 미용,화장의 기초를 배우며 보냈다. 1970년 18살의 나이로 '피에르 가르뎅'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패션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의 데생 몇 작품을 본 피에르 가르뎅은 그를 쿠튀르 회사에 입사시켰다.

고티에는 가르뎅 회사를 거쳐 자크 에스트렐 회사와 장 파투 회사에서 디자인을 한 다음, 가르뎅 회사로 되돌아왔다.

당시 피에르 가르뎅은 파리지앵 꾸띄르보다 런던 스트리트 스타일을 선호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디자인 훈련을 거부하고 1976년 24살 때 자신의 최초의 독자적인 콜렉션을 발표한다.

밀짚으로 만든 식탁 용구로부터 영감을 얻은 패션쇼를 파리의 Palais de la Decouverte에서 감상한 소수의 사람들은 콜렉션이 관심거리가 못된다고 판단했다.

 

그 후 일본의 가시야마 그룹에서 겨우 재정적 지원을 얻게 된다.

이 지원으로, 그는 1979년-1980년 추동 패션쇼에서 제임스 본드를 테마로 한 최초의 콜렉션을 발표한다.

1981년에 이탈리아 회사인 기보와 에콰토르가 고티에의 모험에 합류한다.

재정적 근심에서 벗어난 장 폴 고티에는 모든 부문에 손을 대는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고티에는 패션의 다양한 관습들을 새로 규정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테크닉이 매우 뛰어난 고티에는 패션의 제도권을 패러디하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1988년에는 남성용 스커트를 디자인하여 남성 의류가 갖는 진부성을 해체하고자 했다.

1989년에는 음반을 취입했으며(다행히도 그는 낮에는 본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피터 그린웨이는 고티에에게 <요리사, 도둑놈, 여자, 그리고 그녀의 애인>이라는 영화의 의상을 디자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언더웨어를 겉옷으로 재창조했는데 가장 유명한 사례가 1990년 마돈나의 코르셋 드레스다.

1997년 모델 크리스틴 맥메너미와 어느 선원이 긴 키스를 나누는 텔레비전 광고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되었으며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의 영화의상을 담당하기도 하는등 패션계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있다.

남성, 여성 컬렉션 뿐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유니섹스 스포츠 라인 JPG, 고티에 향수를 만들었고 몇몇 광고에는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 장 폴 고티에, 제이피지(JPG), 고티에 진즈(Gaultier Jean's) 등 세 개의 라인이 있다.

 장 폴 고티에의 데뷔 30주년 기념 회고 패션쇼로 200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7 S/S 기성복 패션쇼에서 모델이 독특한 의상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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